일을 마치고
노트북을 닫으려는 찰나에 뭔가 끄적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오래전 기억 하나를 풀어볼까 한다
평어체 구사를 양해바랍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0년 초 어느날 늦은 오후
경마로 말 그대로 가산을 탕진하고 스스로 뒤질 수는 없어
2.5톤 기사 일자리를 구해 배송일 하면서 근근히 버티던 그때 이야기다
트럭을 몰고 퇴근하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아마 발신자가 농협으로 떠서 받았거나 대표전화로 걸려온
전화거나 해서 받았을 거다
받았더니 농협중앙회란다
그리고 이어서 계좌가 압류됐다고 한다
눈앞이 깜깜했다
월급이 들어온 게 이틀 전으로 거기서 돈을 찾지 못하면
엄동설한 그 추위에 굶어 얼어죽기 딱 좋은 날이었다
(범죄와의 전쟁 박성중의 죽기 딱 좋은 날이란 대사가 오버랩 된다 )
몰던 트럭을 길가에 황급히 세우고 눈이 뒤집혀 다짜고짜 상대방에게
지껄였다
만약에 거기서 월급을 찾지 못하면 오늘 누구 한 명
죽는다고 !!!!
그랬더니 자기는 압류가 걸려서 알려주는 것 뿐이란다
그래서 그럼 뭐하러 전화했냐니 오랜 우리 고객이니 알려준거란다
나는 다시
암튼 오늘 누구하나 죽는 줄 알아라
이 추운 겨울에 월급이 압류되면 어찌 살아가겠냐 ?
그 압류한던 놈 죽이고 나도 죽을 줄 알아라
전화기 너머로 광분을 느꼈던 건지 그 직원의 입에서
뜻밖의 제안이 들어온다
그럼 저희가 1인 생계비는 찾을 수 있도록
공탁을 걸어두겠다
법원에 가서 소명하셔라
그 얘길 듣는 순간 진정이 조금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업무처리로 누군지 모를
사람 한 명의 목숨과 나를 살려준 그 직원에 감사 드리고
자식 대대로 잘먹고 잘살기 바란다
다음날 바로 그 직원이 알려준대로 가까운 농협에 가서
한 달치 입출금 내역을 정리해서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얻어 한 달 보름이 걸렸던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은데 월급에서 1인 생계비라도 건질 수 있었다
글을 쓰고 보니 오래전 과천경마장 포차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내일도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