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라 그런지 기천명이 게시판을 드나드는데도
폼나는 글 하나가 눈에 띄지 않는구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바로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레프 톨스토이 우리들은 이들을 문학가로 기억하지만 실은
우리네와 다름없이 도박의 광기와 처절하게 씨름했던
사람이다.
이들 두사람이 도박판에 빠져들었던 순간과
그 비극을 대하는 태도는 경마를 하는 우리들에게 깊은
화두를 던진다.
도스토예프스키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 부른 파멸"...
도스토예프스키는 유럽의 카지노를 전전하며 룰렛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확률과 패턴을 완벽히 계산해낼 수 있는
'이성적인 도박꾼'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가 빠졌던 가장 큰 함정은 바로
'인간이 확률과 운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었다.
이길 때는 자신의 분석이 맞았다며 자만했고,
질 때는 복수심에 이성을 잃었다.
결국 시계, 외투, 임신한 아내의 반지까지 담보로 맡겼고,
급기야 자신이 앞으로 쓸 ‘모든 소설의 저작권’까지 출판사에
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절박한 벼랑 끝에서 목숨 걸고 쓴 소설이 바로 [도박꾼]이다.
경마판에서도 마찬가지다.
혈통을 분석하고, 기록을 파헤치고, 마필과 기수의 상태를
완벽히 통달했다고 믿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주로 위에는 기수의 미세한 실수, 말의 작은 컨디션 변화,
젖은 주로 등 인간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수만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경마를 '내가 완벽히 분석해서 이길 수 있는 학문'으로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삶을 담보로 잡히게 된다.
톨스토이 "패배를 인정하는 자만이 삶을 구한다"
반면 톨스토이의 도박사는 전혀 다른 궤적을 보여준다.
20대의 청년 톨스토이 역시 카드 도박에 깊이 빠져
하루아침에 당시 거금이었던 1천 루블을 잃었다.
빚을 갚기 위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영지의 대저택
건물까지 팔아넘겨야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에 깊은 수치심을 느낀 톨스토이가
선택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와 달랐다.
그는 "잃은 돈을 도박으로 다시 되찾겠다"는 집착을 버렸다.
그는 자신의 완벽한 패배와 어리석음을 담담히 인정하고
도박판을 완전히 떠났다.
잃은 돈을 복구하려다 인생 전체를 잃는 대신, 판을 털고
일어나 군대에 입대했고 훗날 인류의 대작들을 써 내려갔다.
도박에서 인생이 무너지는 진짜 이유는 돈을 잃어서가 아니다.
‘잃은 돈을 경마로 다시 복구하겠다’는 본전 심리 때문이다.
1경주부터 패배가 쌓였을 때, 마지막 경주에 올인하여 한 번에
되찾으려는 오기가 생기는 순간 파멸이 찾아온다.
톨스토이처럼 자신의 손실을 확정 지을 줄 알고, 패배를
인정한 채 경마장 문을 나설 수 있는 결단이야말로 참된
승부사의 자세다.
경마를 하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매주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사이를 왕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질 때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비극에 가까워진다.
반대로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잃은 것에 연연하지 않으며,
스스로 경계선을 긋고 일어설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을
지켜낸 톨스토이의 결단을 배우게 된다.
고요한 명절 연휴, 승부의 열기 뒤에 숨겨진 인간의 본성을
돌아보며 우리 각자의 경마관을 한번쯤 담담히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