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열명의 친구들 학번으로 얘기 하자면 84학번 참 웃긴게 하나같이
한번에 대학을 못가고 재수 시절을 겪어 85학번이 되었다.
신설동 입시 학원에 등록해 다니면서도 줄기차게 소주를 마시고 줄기차게 놀러 다녔다.
천호동 나이트 클럽은 주말마다 드나들었고
애마부인 같은 당시만 해도 야한 영화가 문화극장 이나 천호극장에 들어오는 날엔 우르르 몰려가
보면서도 부족한 갈증이 해소 되지 않으면
비디오가게 주인과 친분이 있는 친구가 빨간테입을 빌려와 낮이면 비어있는 누나의 신혼 단칸방에
모여 눈알이 빨갛게 충혈될 정도로 숨을 죽이며 보던시절.
친구 하나가 낭만 여행을 가자고 제안해 우리 친구들은 청량리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설악산 등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열차에 오르니 우리 또래 젊은이 들이 큰베낭에 쉐이코 카세트를 어깨에 메고 기타까지 챙겨와
낙엽지던 그숲속에로 시작하는 노래와 함께 흥을 북돋으면 누가 뭐랄것도 없이 하나되어 목청껏
외치고 놀다보니 어느새 새벽 기차는 강릉역에 도착하였다.
뜨끈한 국물맛이 일품인 우동을 한그릇씩 든든히(?) 먹고 물치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싣고
가장 힘들다는 신흥사를 지나 울산바위가 보이는 코스를 선택해 대청봉으로 향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백담사에서 시작하는 코스도 있고 오색에서 시작하는 코스도 있었는데 ㅎ
리더격인 친구가 이끄는 대로 대청봉을 올랐던 기억이 있다
7월초의 설악은 밤이되면 추웠고 중청휴게소에 텐트를 치고 따뜻한 침낭을 챙겨온 다른 등산객
들에 비해 베낭 무게를 줄이겠다고 얇은 이불만 한개씩 챙겨온 우리들은 밤새 떨면서 뜬 눈으로
지세우고 다음날 아침 대청봉 정상으로 향했는데 그 경사가 얼마나 가파른지 스무살 청년도 힘들었던 기억. 지금도 그때의 사진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ㅡㅡㅡㅡㅡㅡㅡ
나이 먹은 지금
나는 생각하는 부분이 얼마나 성숙해 졌을까....
내 자식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힘든 희운각 코스를 선택한 우리들이 대청봉을 올라 희열을 만끽하며 우린 힘든 코스로 왔다고
좀더 수월한 오색코스를 선택해 오른 다른이 들의 등반을 반칙이라고 외친다면
나만 이상한 사람 아닌가?
각자의 방식대로 산에 오르면 그만...
아직도 설악산은 그자리 그대로 인데
변한건
나이들어 변해버린 육체
ㅡㅡㅡㅡㅡㅡㅡㅡ
경마를 하라고 누가 강요했을까
누군가에 이끌렸던가
자의에 의해 접했을 경마
마사회는 그대로 인데
시간이 흘러 흘러 우리의 생각만 변한건 아닌지
뚝섬시절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어 부르기 시작한 야오쵸 (야리쪼) 승부조작이 비일비재 하던
시절은 분명히 있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접근 방식의 차이라 치부하면 그만
이젠 그것이 틀리다 맞다로 대응할 동력도 없다
시대가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마사회의 공성성도 분명 뚝섬시절 경마행정 보단 나아졌다는건 부정할수 없는 현실이니
그거 하나 믿고 지금껏 해온 방식대로 즐기면 그만이니까...
가족과. 친지들 모르게 숨죽여 가며 20~30년 해온경마
우리가 경마 사이트에서
이게 맞네 저게 맞네 지지고 볶고 놀고 있을때
우리 자식들은
미냥 어리지 않은
성숙한 생각을 가지고
오늘도 아빠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것 한번쯤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미안 하잖아요
가족과 자식들한테.........
순대국을 좋아하지 않았던 어린 아이가
아빠를 위해 같이 먹었던 순대국이 성인이 되어서도 좋아하게 되었던 영상을 보면서
캡쳐해 올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