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경마를 1998년에 접하고 그 후로 10년이 지나서야 경마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소중한 젊음이 담겨져 있는 십 년이라는 귀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기에 정말 최선 다한 투혼으로 얻은 경마로부터 자유였다.

담배 역시 고등학교 때 피우다가 딱 10 년 피우고 영원한 이별을 했지만 경마는 이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고 그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경마의 본질을 알아야 하고 스스로를 절제해야 가능한 것이다. 한때 이곳 검빛에서 ‘더케이’라는 필명으로 몇 년 간 글을 남겼는데 글의 내용 50% 이상이 경마에 대한 절제와 마음가짐을 썼던 게 많았다. 물론 마사회에 안일한 상태를 지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신 스스로 마음의 욕망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이것을 잘 다스리고 자중자애하면 누구나 경마로부터 자유로워진다.

2-3개월에 한두 번 경마장에 가서 2-3개 경주를 하며 경마하는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니 말에도 배당에도 아무런 동요가 되지 않는 나를 느끼자, 별 재미도 없고 푸념과 한탄 욕설이 섞인 혼탁한 기(氣)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어 나와 버렸다. 이후로는 일 년에 한두 번 다니다가 어떤 해에는 한 번도 들리지 않다가 괜찮은 말이나 싹수가 있는 말이 있다면 그 녀석 구경하고파 들리곤 했지만 경마는 이제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마사회가 혁신을 하고 정말 괜찮은 조교사가 있다면 마주나 해볼까 했지만 그 마음도 이제 그리 내키지 않는다. 각자 제 스스로 마음을 잘 다스려야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이는 순간 그것이 원인이 된다는 걸 자각하고 어떤 마음이라도 마음이 움직거리면 그 마음에 사라질 때 까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더욱이 찌든 욕망이 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엄청난 구속이라는 걸 인지하며 순간을 자각한다면 절제의 싹은 빠르게 자랄 것이다.

마권을 꼭 쥐고 돌아가셨다는 일본 소설가 아사다 지로의 아버지처럼 이 사람 주변에도 그러한 사람들을 여러 본다. 그들은 마치 당뇨환자처럼 인슐린(관리감독)이 잘 분비되지 않아서 당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몸에 합병증이 생기는 것과 같다. 우리 마음도 절제가 분비되지 않고 성찰하지 않으면 마음은 점점 썩어서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을 인지하였으면 한다.

필자가 쓰는 이 글이 더는 어찌 할 수 없는 이들에게 개똥같은 소리지만 아직 어찌할 수 있는 이들의 가슴에 스며들길 바라지만 사실 그 바람도 의미를 가지질 않는다. 경마는 내게 많은 시련과 아픔을 주었지만 그로 인해서 좋은 공부를 하여 삶을 승화시킬 수 있었던 하나의 질료였을 뿐이다. 일요일 저녁 경마장을 빠져나올 때 웃는 자 몇 인가? 대부분 그들은 마음이 구속되어 외롭고 지쳐서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지만 위로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쓴 소주잔 아니 맥주잔에 소주를 부어 마시며 아쉬움과 한탄을 뿜을 줄만 알았지. 경마장을 가고자 했던 욕망의 시발점인 마음을 돌아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마음을 돌아보지 않으면 결국 자유롭지 못하여 구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풍기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자유를 생각하며, 경마하는 이들의 안녕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