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정성을 다하라]
클린원의 그랑프리 우승을 축하하며 한국에 이런 마필이 들어온 게 정말 다행이고 문현철 조교사는 병력 없이 무탈하게 잘 관리해서 2026년 코리아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랑프리에 대해서 어떤 이견을 내더라도 경마를 바라보는 자기만의 노하우와 지식일 뿐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다. 경마에서 돈을 잃든, 따든, 그저 웃고 즐기든, 성내며 욕하든 간에 모든 것은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삶이며 오늘은 삶의 한 조각일 뿐이다. 비록 한 조각일지라도 그 조각들이 모여서 인생의 성패를 가린다.


늙으면 다들 지난 삶 후회하고 병들어 죽는다지만 차원이 다른 삶은 사는 이들은 필자 주위에 여러 있다. 고차원의 위대한 눈을 지닌 이들이 아둔한 중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어 측은하게 여겨서 보살심으로 도와주려하지만 답답한 삶이라도 그들이 살아가면서 직접 배우고 깨달아야한다. 필자처럼 어리석은 중생들은 겸허한 자세로 삶에 임하고 배우는 마음가짐으로 성찰하며 사는 게 최선의 지혜인 듯하다.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이들은 겸허가 어떻게 생겨먹은 지도 모르고 그저 남 탓과 자기합리를 숙성하여 비루해지는 시간을 쥐어짜 자위하는 이들이다.

이번 그랑프리는 3세마 ‘클린원’이 우승하며 세대교체를 한 게 그나마 큰 다행이다. ‘글로벌히트’ ‘스피드영’ ‘석세스백파’에게서 2026년을 무엇으로 기대하겠는가. 다리질병에다 골병은 들었고 서로 눈치만 보는 경주능력에 나눠먹기로는 퇴보만 자행할 뿐입니다. 그에 비하면 이번 클린원의 선택은 아주 탁월했다. 그랑프리 3세마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오래 전 서울 20조 배대선 마방의 ‘보헤미안버틀러’였다. 새강자도 3세 그랑프리 우승마였지만 당시 그랑프리까지 12연승인가? 여튼 워낙에 출중한 능력을 보였던 마필이지만 보헤미안버틀러는 그랑프리까지 4승밖에 하지 못한 3세마였고 ‘다함께’ ‘쾌도난마’ ‘새강자’ ‘찰리스카즈’ 같은 내로라하는 형님들이 버티고 있었지만 경주를 할수록 힘이 차오르는 신예를 믿었다.

필자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에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두 부류다 표심에 눈 먼 이들이 너무 많아서 하등 취급하고 만날 자리가 있어도 나가지 않는다. 마판에도 관록을 믿는 보수와 신예 능력에 힘을 싣는 진보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베팅을 하고 응원하든 각자 알아서 할 일이지만 필자의 바람은 왕좌를 위협하는 신예가 자주 등장하길 바랄뿐이다. 이번 그랑프리 경주마 클린원과 기수 다실바는 칭찬해도 아깝지 않다. 2300미터 긴 거리를 원평스톰을 선행 보내고 곱게 따라갈 줄 알았지만 거리가 부담스러운 원평스톰도 선행 갈 마음이 없는 걸 눈치 챈 기수는 말을 믿고 1코너부터 선행을 나섰다. 백스트레치 내리막에서 힘안배하며 호흡을 돌리고 부드럽게 3코너 들어섰고 3파롱에서는 말의 활기와 주행자세를 보니 따라잡을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시원하게 결승선을 통과하는 걸 보니, 이것은 그냥 이긴 게 아니라, 마치 안주와 타성에 휩싸여 안일했던 기득권들(말, 기수, 조교사, 마주, 마사회)에게 정신차려라며 포효하는 듯했다.

예전 KRA컵클래식에서 글로벌히트가 선행 나갈 말이 없어 앞장서니 부담스러웠다는 기수의 하소연, 한발 아꼈다가 막판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작전, 이번 경주는 그냥 출전에 의미를 두고 걸음 재봤다가 다음에 하자는 말! 말! 말! 클린원이 깨끗하게 뒤집고 재갈 풀며 던진 말 ‘헛소리 집어치우고 그런 작당할 겨를 있으면 지금 이 순간 오직 정성을 다하라!’
唯天下至誠爲能化
(유천하지성위능화)
오직 정성을 다하는 자만이 세상과 자신을 변화시킨다. -중용-